세상을 떠난 아내가 비 오는 날 기억을 잃은 채 돌아온다는 설정, 이 영화 하나가 저를 꽤 오래 붙잡아뒀습니다. 2018년 개봉한 한국판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2004년 일본 원작과 같은 소설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전혀 다른 감정의 결을 만들어냅니다. 슬픔을 정면으로 들이밀지 않고 웃음 사이에 숨겨두는 방식, 보고 나서 한참이 지나도 이상하게 마음 한켠이 무거운 이유가 거기 있었습니다.재회 — 기적 같은 순간이 슬픈 이유일반적으로 죽은 사람이 돌아오는 이야기는 공포나 판타지로 분류되기 쉽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이 영화를 봤을 때 느낀 건 두려움이 아니라 묘한 서글픔이었습니다. 수아가 살아서 돌아왔는데, 우진과 지호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설정 때문입니다.여기서 핵심은 '망각(amnesia)'이라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뒤바뀐 친구들의 신비한 모험〉은 서로 다른 종족인 숲속 동물 올리와 새 아이비가 몸이 뒤바뀌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처음 재생 버튼을 누른 건 그냥 가볍게 볼 만한 게 없나 싶어서였는데, 직접 보고 나서는 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몸 바뀜이라는 설정이 건네는 것누군가와 오래 알고 지냈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다 안다고 믿었다가 뒤통수를 맞은 적, 저는 꽤 있습니다. '원래 저런 사람이니까'라고 단정 지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면 제가 몰랐던 사정이 있었던 겁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그 기억이 먼저 떠올랐습니다.〈뒤바뀐 친구들의 신비한 모험〉에서 올리와 아이비는 신비한 식물과 접촉한 뒤 서로의 몸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 설정을 영화 이론에서는 '퍼스펙티브 시프트(Perspec..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라는 말이 문장으로는 읽히는데 의미가 선뜻 잡히지 않았습니다. 잠깐 곱씹어 보고서야 시간이 반대로 흐르는 두 사람의 이야기일 수 있겠다 싶었는데, 그 짐작이 맞았고 그게 이렇게 슬플 줄은 몰랐습니다.교토를 배경으로 한 설정, 어디서 왔나저도 처음엔 그냥 평범한 일본 청춘 멜로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교토의 미술대학에 다니는 스무 살 청년 타카토시가 통학 열차 안에서 에미를 만나 첫눈에 반한다는 도입부는 어디서 많이 본 전개처럼 느껴졌으니까요. 그런데 에미가 고백을 듣자마자 뜬금없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 뭔가 다르다는 감이 왔습니다.이 영화는 2016년에 개봉한 일본 로맨스 영화로, 오모리 미카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
2011년 개봉한 프랑스 영화 은 실화를 바탕으로 전신마비 귀족과 전과자 출신 청년의 우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저는 학창 시절부터 신체적 어려움이 있는 친구들 곁에서 직접 시간을 나눈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스크린 밖 기억들이 자꾸 겹쳐 보였습니다. 동정이 아닌 존중에서 시작된 관계가 두 사람 모두를 어떻게 바꾸는지, 연출·메시지·배우 세 가지 축으로 짚어 보겠습니다.연출 — 웃음이 거리를 좁히는 방식무거운 소재를 다루는 영화가 흔히 빠지는 함정이 있습니다. 관객의 눈물을 먼저 계산하고 연출을 설계하는 것입니다. 에릭 톨레다노와 올리비에 나카슈 감독은 그 함정을 정면으로 피해 갑니다. 두 감독은 필립과 드리스의 극단적인 차이를 비극으로 소비하지 않고, 유머의 재료로 전환합니다.여기서 미..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 재생 버튼을 눌렀을 때만 해도 집에 갇힌 가족이 탈출하는 평범한 스릴러라고 생각했는데, 영화가 중반을 넘어서면서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라스트 하우스〉는 '집'이라는 공간 하나만으로 두 시간 가까이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마지막엔 환경과 공존이라는 묵직한 질문까지 던집니다. 단순한 장르물로 보기엔 아까운 작품이었습니다.집이 감옥이 되는 고립 설정, 그리고 생존 전략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먼저 흥미롭게 본 부분은 공포의 출발점이었습니다. 낯선 폐건물에 발을 들이거나 외딴 숲속으로 향하는 게 아니라, 매일 돌아오던 바로 그 집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델가도 가족 — 아버지 제이슨, 어머니 앤, 딸 루스, 아들 그레이엄 — 은 어느 날 아침 문..
밝게 웃는 사람이 사실 가장 힘들다는 말,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울고 싶은 나는 고양이 가면을 쓴다〉를 보고 나서는 그 말이 조금 다르게 들렸습니다. 고양이로 변신한다는 귀여운 설정 뒤에 생각보다 묵직한 감정이 숨어 있는 작품이었고, 특히 요루시카의 OST가 장면과 맞물리는 순간만큼은 제가 직접 극장에 앉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줄거리 — 고양이 가면 뒤에 숨은 진짜 이야기밝고 엉뚱한 행동으로 반 친구들 사이에서 '무게'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중학교 2학년 사사키 미요. 일반적으로 늘 웃고 있는 아이는 별 걱정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제가 이 작품을 보면서 느낀 건 정반대였습니다. 미요는 부모님의 이혼과 달라진 가정환경 속에서 자신의 속마음을 철저히 숨기며 살아갑니다. ..
어렸을 때 봤던 〈이웃집 토토로〉를 어른이 되어 다시 틀었을 때, 저도 처음엔 그냥 추억을 꺼내 보는 기분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장면에서 전혀 다른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메이가 길을 잃고, 사츠키가 토토로에게 도움을 청하는 장면에서 눈물이 날 뻔했거든요. 어릴 때는 고양이 버스가 신기해서 화면만 쫓았는데, 어른이 된 저는 엄마를 기다리는 두 자매의 마음이 먼저 보였습니다. 이 글에는 그 경험과 함께, 영화를 둘러싼 괴담의 진위까지 제가 직접 확인한 내용을 담았습니다.어린 시절, 토토로는 그냥 귀여운 캐릭터였다솔직히 말하면, 어릴 때 제가 이 영화에서 기억하는 건 스토리가 아니었습니다. 토토로의 둥그런 배와 고양이 버스의 발이 열두 개라는 사실, 그리고 빗속 버스 정류장 장면에서 토토로가 빗방..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멜로 영화에서 '엇갈림'이 그렇게 지독하게 작동할 수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유열의 음악앨범〉은 1994년부터 2005년까지 약 11년에 걸친 미수와 현우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작품입니다. 두 사람이 서로 좋아한다는 사실은 관객 눈에 내내 뻔히 보이는데, 정작 당사자들은 번번이 엇갈립니다. 그 답답함이 보는 내내 심장을 조였고, 영화가 끝난 뒤에도 꽤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엇갈린 사랑 — 타이밍과 시대가 만든 비극영화를 보면서 제가 가장 먼저 든 의문은 이것이었습니다. "왜 이 두 사람은 한 번도 제대로 마음을 전하지 못할까?" 처음에는 답답함이 컸습니다. 그런데 곱씹어보니, 이 엇갈림은 단순한 성격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였습니다.1994년 당시에는 휴대전화가 ..
솔직히 처음 포스터를 봤을 때는 그냥 귀여운 고양이 애니겠거니 싶었습니다. 오토바이 타는 고양이 요괴라는 설정만 보고 가볍게 틀었는데, 중반쯤 가서 조용히 뭔가 울컥하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고스트캣 앙주〉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엉뚱한 소동 속에 상실과 그리움을 아무렇지 않게 녹여낸, 예상보다 훨씬 깊은 작품이었습니다.로토스코프 기법이 만든 낯설고 생생한 움직임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제일 먼저 '이게 뭐지?' 싶었던 건 인물의 움직임이었습니다. 걷는 방식이나 고개를 돌리는 순간이 일반 애니메이션과 미묘하게 달랐거든요. 알고 보니 로토스코프(Rotoscope) 기법을 쓴 작품이었습니다. 로토스코프란 실제 배우의 연기를 먼저 영상으로 촬영한 뒤, 그 위에 그림을 덧입히는 애니메이션 제작 방식을 말합니다..
원작 웹툰을 먼저 보고 영화를 본 것이 정석처럼 여겨지지만, 저는 반대 순서로 이 작품을 만났습니다. 애니메이션 《연의 편지》를 먼저 극장에서 본 뒤 조현아 작가의 원작 웹툰을 찾아 읽었는데, 두 매체를 비교하며 느낀 것들이 꽤 많았습니다. 상처받은 아이가 익명의 편지를 따라 조금씩 세상에 마음을 여는 이야기, 그 각색의 완성도가 궁금하신 분들께 제 경험을 토대로 정리해 드립니다.원작 웹툰이 먼저일 필요는 없었습니다원작 기반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흔히 "원작 팬은 실망할 수도 있다"는 경고가 따라붙습니다. 그런데 저는 영화를 먼저 본 덕분에 그 편견 없이 작품 자체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영화 《연의 편지》는 그 자체로 완결된 서사 구조를 갖추고 있었습니다.이야기의 중심은 주인공 소리입니다..
